올해는 1919년 3월 1일 정오,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세계에 한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평화적 시위인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한 ‘3.1절’의 제 99주년을 맞는 해이다.
꽃다운 나이 18세에 차가운 옥중에서 숨을 거둔 유관순은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중 하나이면서, 스스로를 산산이 태워 독립운동의 횃불이 사그러들지 않고 타오를 수 있도록 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의 마지막 유언-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지령리(현 용두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유관순의 온 집안은 신앙을 갖게 되었다.
1905년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설립한 영명중학교를 거쳐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선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맨 앞에서 적극 참여했던 그녀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3월 13일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충남 천안의 ‘병천만세운동’을 주도해 병천만세운동의 주모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체포된다.
유관순은 1차로 공주법원에서 5년 형을, 이어 항소를 통해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 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이 곳에서 결국 사망한다.
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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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18-02-25 22:2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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