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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의 밀알 ‘유관순’독립의 횃불 쏘아올리다

3.1절 99주년, 다시 쓰는‘유관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선교사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 서울 이화학당에서 배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차가운 옥중에서 숨을 거두다
대한독립만세 아우내봉화제2017년 2월 28일 열린 아우내봉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아우내봉화제는 유관순 열사 등이 주도한 ‘병천만세운동’의 발원지다. 올해는 천안 성환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때문에 취소됐다.
올해는 1919년 3월 1일 정오,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세계에 한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평화적 시위인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한 ‘3.1절’의 제 99주년을 맞는 해이다.

꽃다운 나이 18세에 차가운 옥중에서 숨을 거둔 유관순은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중 하나이면서, 스스로를 산산이 태워 독립운동의 횃불이 사그러들지 않고 타오를 수 있도록 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의 마지막 유언-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지령리(현 용두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유관순의 온 집안은 신앙을 갖게 되었다.  

1905년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설립한 영명중학교를 거쳐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선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맨 앞에서 적극 참여했던 그녀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3월 13일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충남 천안의 ‘병천만세운동’을 주도해 병천만세운동의 주모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체포된다. 

유관순은 1차로 공주법원에서 5년 형을, 이어 항소를 통해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 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이 곳에서 결국 사망한다. 

            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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