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드루킹 사건’으로 불거진 포털 여론 조작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논란은 포털 댓글 자체를 넘어 포털 뉴스 서비스의 존폐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뉴스 댓글이 특정 세력의 조직적 개입에 거의 무방비 상태란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면서 소수 의견이 과대 포장되는 뉴스 댓글의 본질적 문제점까지 거론하며 개선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포털 업체는 늦어도 내달 초까지 댓글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여느 때보다 거센 이번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 기능 취지는 ‘여론 형성의 장’
‘여론 조작’ 빈틈
현재 국내 포털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는 지난 2000년 5월 뉴스 서비스를 시작해 2004년 댓글 서비스를 도입했다.
댓글 추천 기능은 2006년 처음 생겼다.
인터넷 이용자가 단순히 뉴스를 읽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여론 형성의 장’을 만들겠다는 게 그 취지였다.
댓글 기능을 갖춘 뉴스 서비스는 이후 포털에서 가장 애용되는 ‘킬러 콘텐츠’로 성장하며 국내 뉴스 소비와 피드백 기능을 사실상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개한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들이 포털 뉴스에 의존하는 비율은 77%에 달했다.
이는 조사대상 36개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2위 일본의 63%에 비해 14%포인트 높고, 프랑스(36%), 독일(30%), 미국(23%), 영국(15%) 등 나라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뉴스 소비 및 피드백에서 이처럼 포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이번 ‘드루킹 사건’에서 드러나듯 댓글이 ‘여론 형성’이라는 당초 취지를 벗어나 거꾸로 ‘여론 조작’의 창구로 악용될 소지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달 24일 “뉴스 소비가 포털로 집중되다 보니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가 더 쉽다”며 “드루킹 사건이나 국정원 댓글 조작처럼 댓글의 존재 이유를 원천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구글은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뉴스를 편집해 보여주고 있지만 댓글 논란 등에서는 국내 포털에 비해 자유롭다. 국내 업체가 포털 내에서 뉴스를 보여주는 ‘인링크’방식인 데 비해 구글은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해주는 ‘아웃링크’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게시자 1명에 ‘공감’ 버튼 53만번…
‘매크로’도 막기 어렵다
댓글 논란의 핵심은 소수의 목소리가 마치 전체의 의견인 양 보여지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이슈에서 이런 논란은 커지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네이버 댓글 현황을 분석해주는 웹사이트 워드미터에 따르면 이 사이트가 개설된 지난해 10월 30일부터 현재까지 6개월여 동안 한 번이라도 네이버에 댓글을 단 적이 있는 아이디는 모두 175만2558개다.
그 중 116개 아이디가 2000개 이상 댓글을 달았고, 1000개 이상을 단 아이디는 3518개였다.
가장 왕성히 활동한 아이디 ‘pant****’의 경우 이 기간 댓글 4299개를 달았다. 그 중 정치 분야가 3411개로 대부분이었다.
현재 네이버는 24시간 기준 뉴스 댓글 작성 개수를 20개, 덧글은 40개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기준을 꽉꽉 채워 댓글·덧글을 쓴 셈이다.
사실상 제한이 없는 공감·비공감의 경우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 아이디 ‘page****’가 6개월여 동안 받은 공감 버튼 수는 무려 53만1603번이나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선호 연구팀장은 “지난 1년간 뉴스에 댓글을 단 사람은 인구의 10% 미만으로 분석된다”며 “소수가 단 댓글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댓글을 곧 여론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자동으로 댓글을 달아주거나 공감·비공감을 눌러주는 프로그램, 이른바 ‘매크로’다. ‘드루킹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미 온라인 마케팅 업계 등에서는 포털 사이트 내 뉴스나 특정 업체·상품 홍보글 등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띄워주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네이버 등은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도입하며 이런 조작에 대응해 나가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조작 기술을 완벽히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난감한 포털, 댓글 개편안 고심중
논란 진화 난망
포털 업체는 거센 댓글 논란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그동안 여러차례 댓글 관련 논란이 있을 때마다 댓글 정책을 개편해왔지만, 지금의 외부 압박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 시민단체 등 곳곳에서 ‘댓글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포털이 일각에서 거론하는 댓글 폐지는 물론이고 ‘인링크→아웃링크’방식 전환 요구도 받아들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에서 나온다.
한 포털 업계 관계자는 “언론사 홈페이지의 과대한 광고가 아웃링크 전환을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라며 “광고 관련 고객 불만이 다 우리 쪽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포털의 속내는 사용자가 포털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생태계 구축’을 노리는 업계 입장에서 잠시라도 포털을 떠나게 하는 것을 절대 원치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지금의 방식에서 포털 업체는 사용자가 뉴스를 클릭해서 들어갈 때마다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뉴스 열독률 증가·사용자 유입 등 부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네이버의 경우 4월 기준 PC 뉴스 우측 광고 배너의 1000회당 노출 가격(CPM·Cost Per Mill)이 1130원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사회 각계의 개편 요구가 워낙 거세기 때문에 주요 업체들은 조만간 개편안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6월 지방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정치 관련 댓글 논란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에서 늦어도 내달 초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네이버는 애초 지난달 발족한 ‘댓글 정책 이용자 패널’을 통해 오는 8월께 종합적인 개선책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이를 조기에 마무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카카오 관계자도 “각계의 의견을 받아 내부에서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댓글 폐지, 아웃링크 전환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 업체가 개선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댓글 정렬순 개선’ 정도의 개선안으로는 "”지방선거만 어떻게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더 큰 비난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