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사회의 자살문제는 특단의 조치와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바라건대 현 정부가 내세우는 사람중심의 과제에 있어 가장 시급히 적폐청산을 해야 할 문제가 자살문제가 아닌가 한다.
청소년, 청년 직장인, 노년 할 것 없이 이 마귀와도 같은 자살문제를 시급히 해결해 보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많이 자살하든 적게 하든 책임이 아무에게도 없기에 먼저 국가기관에 자살방지를 국정과제로 책임져야 할 장관을 세우고(예: 여성가족부 장관) 국력을 총집결해서 자살률 감소의 대전환점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자살율이 매우 높았지만, 사회 전반적 자살 책임은 본인책임론으로, 특히 언론에서 자살자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자살률을 격감시키는 데 일역을 했다고 한다.
우리 동양적 사고에서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오죽했으면 목숨을 끊었겠느냐?”같은 동정론에서 “세상에 너보다 더한 사람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라는 현실질책론이 이제 대두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콜센터도 중요하지만 자살방지콜센터가 보다 더 활성화 되고 약물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찾아오는 자살충동의 사례를 적극 홍보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교리적으로도 자살은 타살보다도 더 나쁘다.
살인자도 죄를 회개하면 비록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더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자살자는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지극히 나쁜 죄에 속한다고 본다.
자살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동정론은 자살을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보도 태도에 따라서는 판단력이 미숙하고 감성적인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자살미화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자살율을 OECD국가 중간 수준으로만 감소시킨다면 그 공로는 높이 평가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검찰조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참으로 무식한이야기지만 사건 조사중 피의자가 자살하면 그 담당검사는 퇴임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면 어떨까.
이것은 자살하면 사건을 덮어두는 온정론적 비윤리적 적폐를 청산하고 담당검사는 옷을 벗되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사회공감대를 제안한다. 매우 어리석은 추측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자살로 잘 위장된 살인사건이 경찰에서 자살로 분류되는 경우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의 성공은 관심과 노력으로 좌우된다. 좋은 예가 화장실 문화다. 어느덧 우리나라가 화장실이 깨끗한 문화국민이 되었다. 이것은 돈과 정책의지로 될 수 있었다.
이제 자살율을 낮추는 문제는 교육과 예방시책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가에 삶의 의지를 전염시키는 문화, 예술, 종교, 교육, 보건 등에 총력을 기울이자. 어떤 이는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고 강연하는 것을 들었다.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휴먼승리스토리가 많이 방영되어 삶의 향기를 온 누리에 퍼트려 자살 없는 에덴을 꿈꾸자.
세상은 때때로 노래하며 때때로 울면서 꿈꾸며 살아가는 자의 것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정현 선수의 발바닥은 오늘날 자살공화국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할 생명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