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막장’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세요

유화웅 칼럼
태백시 석탄박물관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에너지원으로 석탄 연료의 공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귀한 자료와 역사가 전시되어 있고, 채탄의 체험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1950년 대한석탄공사가 설립되고, 1980년대까지 검은 황금으로 불렸던 석탄이 1989년 정부의 석탄 합리화 조치 이후 탄광들이 속속 문을 닫게 되고, 이제는 개인 탄광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발전의 동력이었던 석탄이 전기, 액체연료, 기체연료, 원자력에 의해 밀려나, 지금은 석탄의 역할이 거의 없어지게 됐다.

그러나 일제 때부터 개발되어 1980년대 말까지 석탄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기 위해 종사했던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은, 우리의 역사에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1958년 5월3일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이 영월 탄광을 방문하여 광부들을 격려할 정도로 석탄 산업은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 석탄을 캐기 위해 지하 갱도에서 그 죽음과 대면하며 작업을 했고, 그로 인한 희생자도 1943년 이후 1975년 11월 20일까지 강원도 내에서 순직한 산업 전사 수만도 4097명이나 됐다.

그러다보니 지하 900m~1000m‘막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명을 건 작업이라 하겠다. 그래서 광부들에겐 다음과 같은 금기(禁忌)가 있을 정도였다.

• 출근 시에 여자가 앞질러 걷지 않는다.
• 흉몽(凶夢)을 꾼 날은 출근하지 않는다.
• 갱내(坑內)에 쥐는 잡지 않는다.
• 도시락은 청색, 홍색 보자기로 싸고, 밥은 4(四)주걱을 담지 않는다.
•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면 조심한다.
• 신발은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뜻으로 안방 쪽으로 벗어 놓는다.

매 순간 위험과 직면해 있다는 그 절박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광부들에게서 ‘막장’이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고 가족에 대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사투(死鬪)의 현장이요, 나아가 국가 발전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희생과 충성의 거룩한 장소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광부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963년 12월 서(西)도이치에 광부를 파견하기 시작하여, 1977년까지 7968명이 가서 지하 1000m의 ‘막장’에서 석탄 덩어리와 가루를 뒤집어쓰고, 돈을 벌어 우리나라로 송금한 것이 경제 개발의 종자돈이 되기도 했다.

‘막장’ 그곳은 존엄한 곳이고 입에 함부로 오르내리며 폄훼해서도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근래 ‘막장’이란 말을 크게 훼손시키는 것을 본다. 방송, 드라마에서 비윤리, 불륜, 부도덕한 장면이나 내용에

‘막장드라마’, 또는 사회에 악영향을 주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에게 ‘막장 인생’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잘못을 떠나 막장에서 일했던 분들에게 대한 크나큰 인격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막장’에는 가족에 대한 짙은 사랑이 있었고, 동료의 우정과 헌신이 있었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있었던 존귀한 곳이다. 
‘막장’은 국가산업발전의 최일선의 첨병(尖兵)들이 있던 곳이다. ‘막장’,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