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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생 개띠들의 반란 - 라오스 여행기

바람이 쉬어가는 곳 라오스 여행기 ? 반 윤 희(시인, 수필가, 서양화가)
시인이며 수필가이자 서양화가인 반윤희 씨는 지난해 5월 18일부터 5월 22일까지 3박5일 일정으로 여고동창 29명과 ‘바람이 쉬어가는 곳,  라오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라오스여행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동굴체험 바로 직전 기념사진.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구명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헤드라이트를 하고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를 수 있는 옷과 신발을 신고 장갑도 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차례로 큰 튜브를 타고 줄을 잡고 차례로 동굴로 들어갔다. 

조금은 두려웠는데, 막상 들어 가 보니 그리 크지도 깊지도 않은 동굴이다. 줄을 잡고 물을 가르면서 발로 동굴을 차면서 올라가는 동굴체험은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에 마음껏 소리 지르고 신나게 놀았던 바로 그 기분인 것이다.  

오십년 묵은 체증이 모두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모두들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는 것이다. 시집 와서 살면서 언제 이렇게 소리 지르며 신나게들 살았던가 싶은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트럭을 타고 마구 달려서 도착한 곳은 ‘카약킹’이라는 쏭강의 강가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동창들과 먹고 떠들며 즐기는 가운데 서서히 노을이 물들어 가고, 순식간에 캄캄해 졌다. 모기는 기승을 부리고, 모닥불이 피워지고, 하늘엔 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이기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담아서 하늘로 띄워 보낸다. 짝을 지어서 함께 붙들고 촛불을 밝혀서 소원을 빌며 하늘에 띄웠다. 밤하늘에 붉은 등이 하나 둘 하늘로 차례로 떠올려 지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며 난생처음 해 보는 행위가 정말 신바람이 났다.

얼마를 신바람 나게 놀았는지, 이제 내일을 위해 가야 한다고 한다. 또 툭툭이에 나누어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신명을 다 못 풀었는지,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오스의 밤하늘에 도장이라도 찍을 듯이 소녀들이 되어 ‘고향의 봄’을 위시해서 ‘푸른 하늘 은하수’ ‘과수원길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위시해서 ‘안동여중고교가’를 불러 제키기 시작했다.

문필봉 고운자태 높이 솟아서/ 화려한 삼천리에 거룩한 기상/ 도의의 실천에 인격을 닦아/ 스스로 힘써서 올라가오리/ 아아 아름답고 참다운 안동여자중고교/ 아아 안동여자중고교 만세만세만만세/ 얼마 만에 불러 보는 교가인가 목이 터져라 불러 대면서 라오스의 밤하늘을 깨우면서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백팔십 명 졸업을 해서, 서울로 시집을 온 친구들이 백여 명, 긴 세월 함께 해 왔다. 안동지방 특유의 유교(儒敎)교육을 받으며 자라서, 현모양처로 배운 대로 실천하면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았었다. 이제는 노년의 세월이 되어서 이렇게 함께 유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노년을 함께 하니 정말 멋진 동창생들이다.

다이빙 체험장 앞의 반윤희 씨.
2017년 5월 21일 일요일
 오늘은 방비엥을 떠나 라오스수도인 비엔티안으로 4시간을 달려서 이동을 하는 날이다. 

전신마사지를 받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도 주인은 여사장인데 한국 사람이다. 라오스에서 제일 잘 하는 곳이라고 한다.

거의 19~20세 되어 보이는 처녀들이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에게 달라는 대로 팔 만원을 더 지불하고 말도 잘 들으니, 노년에 여고동창들이 이렇게 많이 함께 하는 팀도 처음이고, 시간엄수도 잘한다며, 어머니 같은 분들이라며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애써 준 부산사나이였다.    

첫째 날 마사지 때는 수고비로 1달러를 지불했는데, 오늘은 2달러를 지불하란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곳의 풍습은 거의 십대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특히 남자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생활전선에 내 몰린다고 했다.

평균수명도 매우 짧고, 특히 이십대 아래의 인구가 많다고 하니, 미래에는 잘만 하면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이 아닌가 싶다.

인구비례가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 전신마사지를 잘 받고 나니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옆에 친구에게 2 달러를 빌려서 지불을 했다.

이제 수도에 있는 화려한 사찰 탐방을 나섰다. 국교가 불교로 찬란했던 왕조시대에 사원이 3000 여 사원이 있었으나 전쟁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왓 씨사켓’사원은 1818년 건립되어 1935년 재건된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 된 사원으로 일부가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파괴 되었지만 사찰 본당은 그대로 남아 있은 곳을 보고, ‘호파깨우’ 빼앗긴 에메랄드 불상을 모셔 오기 위해 세워진 왕실사원을 보고,

‘왓 인빵’ 작은 사원으로 잘 정돈된 정원과 화려한 건물들을 보고, ‘왓 시므앙’ 사랑에 대한 전설이 있는 사원을 둘러보는데, 이곳은 특히 소원을 비는 곳으로 남녀들이 많이 와서 기도를 하는 곳이라고 한다. 

메콩강 야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메콩강 뚝 밑에 길게 야시장이 휘황찬란하게 이어져 있는 곳에 오토바이가 정말 많다. 그렇게 오토바이가 많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트럭장사처럼, 여기는 오토바이장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둑으로 올라오니 음악소리가 들리고, 무더기무더기 모여서 체조도 하고, 춤도 추고 진풍경이다. 메콩강의 모습이 한강의 모습과 같다.

건너편 강에는 휘황찬란한 야경이 눈에 들어 왔다. 멀리 노을이 붉게 퍼져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제 메콩강변에 즐비하게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만찬을 한다고 한다.

얼마를 걸어갔을까! 꽤나 먼 거리를 걸어서 가니까 정말 식당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다.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태국이라고 한다. 메콩강을 가로질러 놓고, 휘황찬란한 태국을 등 뒤로 하고, 라오스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의 음식은 생선이랑 닭고기 종류인데 대부분 튀김요리였기 때문에 너무 기름져서 입에 맞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검은 개 한 마리가 내 옆에 와서 지켜보고 앉아 있다.

한 7~8세 되어 보이는 예쁜 여자아이가 연밥을 들고 와서, 말없이 손짓을 하면서 크고 맑은 눈동자를 맞추려고 애를 쓰고 서 있다.

어쩌면 저렇게 예쁜 아이가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돈벌이에 내 몰리고 있을까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내게 돌아 온 몫의 음식을 주었더니, 인사를 하고 얼굴이 환해져서 가는 뒷모습이 더욱 예쁘다. 옆에 검둥이는 계속 앉아서 처다 보고 있다.

나는 죽과 야채와 과일을 먹고, 고기와 생선을 검둥이에게 다 주었다. 허겁지겁 얼마나 잘 먹어 치우는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 것이다.

비행장으로 가는 도중, 삼륜자동차에 여섯 명 씩 타고, 개선문 앞에 대기 하고 있는 버스로 갈아 타기위하여 개선문 광장에 도착하였다. 가이드가 야간개선문을 배경으로 함께 타고 온 친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공항에 도착하여서, 가이드와의 작별인사를 하고 22시45분에 비엔티안을 떠나서, 월요일 5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3박 5일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공항에 내리니 살갗에 스치는 바람마저도 느낌이 다르다. 5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화려하던 목단도 다 지고 씨방이 맺혀 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고작 칠십 만 명이 약간 넘는 정도이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불편하고 교통수단도 좋지 않았지만, 사춘기를 함께 지내온 여중고동창들과의 해마다 다녀 온, 어느 나라 여행보다도 동심을 일으키는 멋진 여행이었다. 

아마도 향수가 짙게 드리워진 그 모든 여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것 같았다.
정말 어렵게 사는 모습들이지만, 어찌 그리도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들이며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려 주는 모습들이었다.

다음 날 길을 나서는 데 모처럼 가을하늘처럼 맑고 청명한 드높은 하늘가에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워 올라서 마음마저도 두둥실 떠오른다.

아~ 우리가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살며, 이 좋은 기후와 환경에서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불평, 불만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라오스는 빈곤 국가이면서 행복지수는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왜,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세계 1위이고, 행복지수도 꼴지 수준이라고 하니 한심하지 않는가! 

라오스는 나라의 보물이라고 여겨지는 그 모든 것들이 전쟁 때문에 모조리 파괴 되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서 빈곤해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안고 돌아 왔다.  

지금 우리는 전쟁의 위협(威脅)속에서 불안한 상태이다. 모두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못하게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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