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위암 원인균이다.
강력한 위산이 분비되는 사람의 위(胃) 점막 상피에 기생하는 유일한 균으로, 위암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의 질병 발생에 관여한다.
국내 중년층 이상의 헬리코박터균 보균율은 6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보통 건강검진에서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조기위암 등을 동반한 헬리코박터균이 검출되면 항생제를 이용해 제균하는 게 일반적인 치료법이다.
1983년 호주의 의사 배리 마셜<사진>과 로빈 워런 박사가 이 균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다. 이후 이 균이 위 관련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의사는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헬리코박터균이 언제부터 세상에 존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 균이 위염과 위궤양의 원인균이라는 마셜 박사팀의 발표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인체에 기생했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가정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국내에서 제시됐다. 약 400년 전인 1600년대 조선시대 미라의 위 조직에서도 헬리코박균 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이은주(서울아산병원 내과)·신동훈(서울대병원 해부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Anthropologischer Anzeiger) 1월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 두 구의 위 표본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 헬리코박터균 유전자(DNA)가 처음으로 검출됐다.
이는 두 미라가 당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위염이나 위궤양 등의 질환에 걸렸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이들 미라의 사망 당시 연령이 40대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심한 경우 위염이나 위궤양이 위암으로 악화함으로써 조기시망에 이르렀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은주 교수는 “조선시대에도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유행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라며 “현대의 연구결과를 대입해본다면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하지 않는 자체가 다른 질환으로의 악화 위험도를 높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하면 위암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소화 약리학과 치료’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하면 위암 이전 단계인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이 호전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위암 발생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복부 불쾌감·메스꺼움·구토 등 소화기계 증상을 보이거나 위암 정기 검진을 받은 환자 598명을 대상으로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 변화를 최대 10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조사 대상자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음성 그룹 65명,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양성에서 제균 된 그룹 442명, 제균 되지 않은 그룹 91명이었다.
이들의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 증상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로 호전됐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위축성 위염 뿐만 아니라 장상피화생도 호전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위암 발생도 예방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최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