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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춘賞’ 을 아시나요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66
우리나라에 골프는 언제 들어 왔을까. 
조선시대의 격구(擊球)가 골프와 비슷해서 골프의 원조라고도 주장하지만 골프와는 거리가 멀다.
약 125년 전 함경남도 원산에 서양 외국인 전용으로 만든 6홀 골프장이 있었다고 한다.

확실한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골프장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고관들과 기업인 80여 명의 회원들이 만든 서울 청량리 근처의 16홀 더블 티(T)제 경성골프구락부가 있었다.
그 후 영친왕은 왕실의 말과 양을 키우던 군자리(지금의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자리)의 땅 30만 평과 건설비를 하사하며 청량리에 있던 골프장을 이전 건설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929년 6월 최초로 정규 18홀 경성골프구락부가 완공 탄생되었다. 이 당시 영친왕도 수시로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 후 6.25 동란이 발발하면서 이 골프장은 폐허가 되었고 다시 농장으로 변했다.
당시 주한 미군들이 골프를 치러 일본까지 간다는 말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그 위치에 서울컨트리클럽이라는 새 이름으로 골프장을 재건토록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서울CC는 다시 고양시 원당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이 후 18홀 추가 공사를 거쳐서 오늘의 36홀 회원제 서울한양컨트리클럽이 되었다.
우리 골프역사에는 큰 족적을 남긴 한 인물 연덕춘(延德春1916~2004)프로가 있다.

그는 일제하의 경성골프구락부 출신 한국 프로골퍼 1호이자 1941년 25세의 나이로 일본오픈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연덕춘은 경성골프구락부 옆동네에 살았다.16살이던 1932년 어느 날 경성골프구락부 에서 마스터 캐디로 일하고 있는 나이 많은 조카를 만나러 갔다가 그로부터 마스터 보조역을 제안 받으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어깨 너머로 남들의 플레이를 보며 골프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이를 본 한 일본인 프로가 아이언을 선물하자 밤새 연습을 하며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다.
그가 천부적인 소질로 1년 만에 이븐파를 기록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프로에 도전해 보도록 권했다.

1934년 연동춘은 일본으로 골프 유학길에 올라서 도쿄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후지사와 골프클럽에서 본격적으로 골프수업을 받게 된다. 그는 1년 만에 일본 프로자격을 취득하여 프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 프로골퍼가 되었다.

그는 1935년 처음으로 일본오픈에 출전 했으나 컷 오프의 쓴 잔을 마시고, 귀국하여 경성골프구락부에서 레슨을 하면서 일본대회 우승을 노리다가 여섯 번째 도전 끝에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우승보다 5년 먼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와 함께 한국인의 우수성을 과시한 셈이다.

그러나 해방 후 6.25 동란으로 골프장이 다 파괴되어 그의 전성기 나이인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약 15년간 골프채를 제대로 잡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쟁의 상흔이 아문 1956년 그는 영국 런던 월드컵 골프대회에 참가했고 2년 뒤 42세로 한국프로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은퇴했다.

그는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 KPGA) 결성에 산파 역할을 했고 2대(代)에 걸쳐 회장을 맡으며 한국 골프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사용하던 골프채(감나무와 Hickory 나무 재질)는 문화재청의 체육유물 문화재로 등록 되어 있다.

현재 KPGA는 매년 그 해 최저 평균타수를 친 국내 프로에게 연덕춘을 기리기 위한 ‘덕춘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가 가르친 원로 한장상(1941~)프로도 연덕춘 이 후 31년 만인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트로피를 거머 쥐었다.

김경태는 일본에서 2010년 3승과 상금왕 2015년 5승에 상금왕, 2016년 3승을 더하여 총13승을 기록했다.
배상문의 2011년 일본오픈 포함 3승으로 한국선수들은 77년간 일본무대에서 총 69승을 거두었다.

‘여자골프의 전설’로 통하고 미 LPGA에 첫 한국인 우승자인 전 KLPGA 회장 故 구옥희(1956~2013 )프로와 현재 맹활약 중인 신지애도 일본에서 연동춘의 ‘DNA’를 이어 받고 있다.
이제 한국선수들은 일본을 발판으로 미국과 세계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 6.25 동란 등 파란만장한 수난과 격동 속에서도 연동춘의 프로정신은 면면히 이어져서,우리는 현재 세계적인 골프강국으로 우뚝섰고 최경주 같은 골프 영웅들과 LPGA 태극낭자 군단을 탄생시켰다.
이들과 함께 동반 성장한 골프산업 덕분에 우리는 최상의 골프레저문화를 즐기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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