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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窓薄暮輕颸度 서창박모경시도 已覺秋凉進一分 이각추량진일분

손주들을 위한 할아버지 서당, 한시 구절로 보는 24절기 - 만공(滿空) 배재수

해질녘 서창가에 서늘바람 지나니, 상쾌한 가을기운 이미 벌써 느껴지네


대서(大暑)도 지나고 장마도 끝났지만 여전히 무덥고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날이 잦다.
그러나 한줄기 소나기가 퍼붓고 나면 벌써 서늘한 가을공기의 맛을 느껴 볼 수도 있다. 가을이 벌써 문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한시(漢詩) 구절은 조선조 숙종시대 병조참의와 함경도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1633년~ 1709)의 한시  ‘立秋’ 4행 중 마지막 2행이다.
아무리 무더워도 이 시기가 되면 밤에는 이미 가을기운을 느끼게 된다는 계절적 분위기를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다.

내일 8월 8일은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을 가진 절기 입추(立秋)다.
24절기의 13번째 절기로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와 있을 때다. 음력 7월, 양력 8월 8~9일 경이 이때다.

이쯤은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8월 초부터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지만 자연섭리는 어김없이 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다가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8월 10일~15일만 지나면 칠월 칠석 전후가 되어서 저녁에는 제법 시원함이 느껴진다.

특히 이때부터는 가을채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김장용 채소 무와 배추를 심어서 10월 서리가 내리기 전에 추수하여 김장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농사도 김매기가 끝나고 좀 한가해지기 시작해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도 전해 진다. 5월이면 모내기와 보리추수로 매우 바빠서 ‘발등에 오줌 싼다’ 는 말과 좋은 대조를 보여 준다.
동양의 역(歷)에서는 입추부터 입동까지 석 달 간을 가을로 여긴다.

봄에 비가 안 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지만, 이 시기는 햇볕에 의해 곡식들이 여물어 가는 때이므로 비가 온다면 알곡이 잘 익지 못해서 곡식수확량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따라서 이때는 닷새동안만 비가 와도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조정과 각 고을에서 올렸다.
이 기청제를 성문제(城門祭) 또는 천상제(川上祭)라고도 했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겼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일어나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치기도 했다.

이 시기는 과일과 채소 등 먹거리가 넘쳐나서 사람과 동물들도 살이 오르고 에너지가 넘쳐 나는 절기다.
그래서 입추는 살 맛이 나는 계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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