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의 계절 가을, 공연기획사 엘ㆍ 컬처(대표 임승환, 사진)는 지난 10일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한국예술가곡 탄생 100주년기념 제 7회 가곡드라마‘작곡가 홍난파를 위하여’를 공연했다.
서울시, (사)한국음악회, (사)홍난파의 집, (사)서울문예 및 원 인터내셔널이 후원한 이날 공연은 서울시가 공연업 회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연주곡들 사이에 간단한 연극이 가미된 흥미로운 장르, 토종 오페라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위하여’는 매년 정기공연 시리즈로 한 편씩 무대에 올리고 있다.
특정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극화하고 다시 조명해 봄으로써, 그 예술성은 더욱 부각시키고 그들의 작품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 재탄생시켜 보기 위함이다.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도 소재로 다루어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한다.
2005년 설립된 이 기획사가 지난 2년 간 공연했던 시리즈 ‘시인 윤동주를 위하여’와 ‘파독 간호사를 위하여’는 가곡오페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세 번째 시리즈인 ‘작곡가 홍난파를 위하여’는 ‘소학교 시절 홍난파의 꿈을 노래하다’로 시작하여, 마지막‘홍난파가 만나는 독립운동가 그리고 죽음’까지 그의 일대기를 총10 파트(Part)로 나누어 구성했다. 극 중 그의 명곡 ‘봉선화’외 총 20곡을 새로 선보였다. 단지 홍난파를 위한 무대에 그의 곡은 단 한 곡 뿐인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공연 역시 600석 규모의 극장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된 객석 300석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꽉 막혔던 공연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으로 숨통을 틔어 주는 듯 했다.
우리나라 가곡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 선생은 예술가이자 철저한 애국자로도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일각에서는 그의 경력 중 극히 지엽적인 부분만을 확대하여 친일로 매도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의 전 생애를 연구한 역사가들에 의하여 사실이 아님으로 판명났고 오히려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홍난파는 독립운동자금 기부를 하고자 연주자의 손발같은 바이올린을 전당포에 맡기기도 했다는 비화도 공연 전반부 마지막 파트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원로 작곡가 최영섭 선생을 비롯 신귀복 등16명의 작곡가가 참여했다. 최정상급 소프라노 임청화(백석대 교수)를 필두로 정상급 성악가 이미경 김민지 백은경 황인자 이수영이 잘 정리된 홍난파 일대기 나레이션과 함께 각 파트별 2~3곡 씩 연주하여 모처럼의 가극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줬다.
거물급 테너 박기천(서울장신대 교수)과 바리톤 고성진(한서대 교수)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성악인 송기창 성궁용 송민태도 등장하여 짙어가는 여의도의 가을밤을 우렁찬 가곡 메아리로 가득 채웠다.
피아니스트 최은순의 힘찬 건반터치, 오보에 김예진의 봉선화 곡 반주는 가슴을 찡하게 했고, 바이올린 나지은과 함께 극 중 가곡들을 음악예술품으로 끌어 올려주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서양 오페라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조명등으로 자칫 연주자와 곡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질 수 있다.
그러나 ‘위하여’는 별도 무대 세트가 없고 나레이션 자막용 프로젝션 스크린 하나 뿐이며 극 중 배우도 두 명이 반복 등장한다. 오로지 가곡에만 집중 몰입시키려는 권혁우 연출가의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예술감독을 맡은 여류시인 임승환 대표는 시집 ‘첨성대’ 가곡음반 ‘시인 윤동주’등 여러권의 시집과 가곡음반을 낸 문학가이자 음악공연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63곡을 쓴 그녀는 이 무대에서도 20곡 모두 손수 작시하는 맹렬한 문학 음악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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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환 대표 |
임승환 대표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보낸 메시지에서, “기존 오페라는 외국어와 비용문제로 한계가 있고 관객들은 클래식 장르에 대해 항상 익숙하지 않음을 느낀다. 이를 차별화 하고자, 직접 쓴 시에 우리나라 최정상 작곡가와 성악가들이 곡을 붙이고 연주하는 무대가 이 번 작품”이라며 “역사적 사실에 재미를 더한 이번 작품을 통해 작곡가 홍난파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더 깊이 알게 되기”를 희망했다.
극 중 ‘목걸이’와 하이라이트 곡 ‘봉선화’를 열창하여 감성적 매력이 넘치는 음색으로 평가 받는 황인자 소프라노는 공연 후 소감에서, “코로나로 불 꺼진 무대와 텅빈 객석을 보며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심한 갈증을 느껴 왔었는데, 무대와 관객을 다시 만나니 에너지가 샘솟는다”며 흥분된 감정을 애써 감췄다.
홍난파는 자신의 유언대로 연미복을 입고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기리기 위한 이번 가극에는 가사 한 마디에도 진한 문학성을 그려넣고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예술성 음악성과도 잘 융합이 되도록 공을 드린 꾸밈없는 작품으로 공연음악계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공연업 진흥을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